왕초보도 가능한 블로그 수익화! 무료 웨비나 신청

가난하게 태어난 건 내 잘못이 아니지만…

예전에 친구 집에서 키우던 물고기를 본 적 있다. 손바닥만 한 작은 어항 속에서 하루 종일 뱅글뱅글 도는 게 다였다. 물은 맑고 먹이도 충분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그 물고기를 조금 더 큰 수조로 옮겼더니, 이상한 일이 생겼다. 물고기가 넓은 공간을 활용하지 못하고, 계속 전에 있던 작은 구역만 맴도는 거다.

자기 세계가 거기까지였던 거다. 바깥은 ‘모르는 곳’이자 ‘위험한 곳’이었다. 그게 무섭고 익숙하지 않아서, 이미 넓어졌는데도 갇힌 채로 산다.

어릴 때부터 묶여 있었던 동물은, 아무리 힘이 세도 더 이상 자신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그 밧줄에 묶여 산다. 그리고 그 줄의 이름은 ‘가난’이다. 단순히 통장에 돈이 없다는 의미의 가난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믿게 만드는 정신적인 굴레 말이다.

우리 삶의 조건도 종종 이렇다.

태어난 집, 자라온 환경, 듣고 자란 말들.

그게 곧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어버린다.

제약된 환경이 물려주는 건, 두려움이라는 유산이다

부모는 자식을 아끼고 사랑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사랑이 때론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변해, 가능성보다 안정만을 추구하게 만든다.

“안전한 게 최고야.”

“너무 큰 꿈 꾸지 마.”

“우리 집안은 그런 거랑 안 맞아.”

“공무원이 최고야”

그땐 몰랐다. 그 말들이 ‘사랑’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작은 어항 속에 가둬버리는 말들이란 걸. 나는 그 어항을 집이라 생각했고, 세상을 그렇게 배웠다. 이런 말들은 실패를 막기 위한 조언 같지만, 실제로는 세상에 나아가보기도 전에 마음을 접게 만든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어떤 문이 열려 있어도 그 문을 지나가지 않는다. 그 문을 통과한 적도, 통과해본 사람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환경이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거기 머물러야 할 이유도 없는데, 우린 자주 머무는 법만 배운다. 나아가는 법은 배우지 못한 채.

부모님의 말, 그건 경험이지 정답이 아니었다

내가 처음 사업을 하며 힘들어 할때 아버지가 하신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물론 응원도 많이 해주시지만, 밤낮없이 일하는 아들이 걱정이 되었을거다.

“그렇게 힘들게 벌어서 뭐 하려고 하니?”

“돈이 다는 아니야, 건강이 최고다.”

틀린 말 아니다. 백 번 맞는 말이다. 나도 건강하고 싶고, 나도 힘든 거 싫다. 근데 문제는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메시지였다.

“그냥 지금처럼 살아. 도전하지 말고, 바꾸려고 하지 마. 안정적으로, 적당히 벌면서, 아프지 말고 살아.”

그 말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말이 무서워서 멈칫했었다. 왜냐하면 그게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내 어항은 더 단단해졌고, 더 좁아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멈춰 있는 게 보였다. 몸은 계속 바빴지만, 마음은 제자리였다. 그때부터였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내 안에서 조금씩 자라기 시작한 건.

그 생각은 처음엔 죄책감이었다.

“내가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닐까?”

근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그럼 평생 이 안에서만 살 건가?”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부모가 될 텐데, 그때도 지금처럼 말할 건가?”

그게 내 안의 첫 균열이었다. 그 작은 의문 하나가 내 틀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아주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두렵지만, 한 걸음.

망설여도, 한 걸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한 걸음.

나를 붙잡고 있던 건 세상이 아니라, 내 생각이었다. 그걸 깨닫고 나서부터, 내 어항은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처음으로 ‘나도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기 시작했다.

싸워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패턴’이다

우리가 이 환경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누군가가 나를 막아서가 아니다.

그저, 내가 가진 생각의 틀 자체가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늘 “안 된다”는 말만 들어왔고,

늘 “안정”이 미덕이라고 배웠고,

늘 “그게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믿어왔다.

그렇게 쌓인 ‘생각의 패턴’이 우리의 선택지를 줄이고, 가능성을 차단한다.

부모님과 싸울 필요는 없다.

내가 부모님을 존경하지 않느냐고? 아니다. 나는 정말 그분들을 존경한다. 없는 형편에서도 우리 두 형제를 다 키워주셨고, 한 번도 불평하지 않으셨고, 심지어 아직도 우리 걱정이 먼저다.

근데… 그래서 더 알아야 했다. 그분들이 살아온 방식과 내가 살아야 할 방식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어릴 땐 몰랐다. 그분들의 현실이 나의 미래가 될 필요는 없다는 걸. 사랑하지만, 틀에서 벗어나는 게 불효는 아니라는 걸. 이제 나는 알게 됐다. 내가 내 삶을 바꿔야, 언젠가는 부모님의 삶도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들이 물려준 방식과는 다른 선택을 내가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길을 가는 건 배신이 아니라 진짜 자립이다.

“가난은 되물림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그 되물림을 계속 받고 있다면, 그건 100% 내 책임이다.”

이 말은 차갑다. 심지어 부모님이 들으면 기분 나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이다. 부모의 삶을 존경할 순 있어도, 그들의 방식대로 살 필요는 없다.

그들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들의 한계를 물려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진짜 사랑은, 서로를 책임지려는 게 아니라 서로의 가능성을 지켜주는 것이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건 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고방식을 물려받아 그대로 사는 건, 이제 내 선택이다.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넌 진짜 어디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하냐?”

돌이켜보면, 예전 나는 그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면, 내 한계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었으니까.

태어난 조건이 그랬고, 들어온 환경이 그랬고, 주변 사람들 말도 다 그랬으니까. 근데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내가 어디서 왔느냐보다, 내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환경이 나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결정짓게 둘 필요는 없다. 태어난 조건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든 바꿀 수 있다. 내가 어디서 자랐느냐보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어디까지 갈 수 있다고 믿느냐다.

바다를 보지 못하면, 평생 그 어항이 전부인 줄 알고 산다. 가난은 확실히 되물림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단순히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시스템을 벗어나는 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자식의 가능성을 믿어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게 본인의 삶에서 배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식이 모험하려 하면 걱정부터 하고, 뭔가 시도하려 하면 말리는 거다.

그러니까 이 싸움은 부모님과의 싸움이 아니다. 익숙함과의 싸움이다. 그 익숙한 사고방식을 끊어내야 한다. “우리는 원래 안 돼”라는 말에 “왜 안 되는데?”라고 묻는 순간, 비로소 수조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그리고 부모님 역시 언젠가는 이렇게 말해줄 날이 올 것이다.

“이제 너는 너만의 길을 가라.”

그 말을 너무 늦게 듣지 않기 위해, 지금 우리가 먼저 한 발짝 나가야 한다. 밧줄을 스스로 끊어내는 연습부터, 지금부터라도. “나는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우리를 여기까지만 살게 만든다. 이제 그 생각부터 바꾸자.

바다는 멀지 않다. 지금도 수조 밖에는 바다가 있다. 문제는, 내가 그 바다가 있다는 걸 믿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다.

애드센스로 20억 순수익? 블로그 전부 공개하는 무료 강의

신청하기
워드프레스 이메일 전송 문제: 비밀번호 초기화 메일 안 올 때 해결 방법 선한 영향력엔 관심 없다, 기부에 대해

댓글 남기기

모바일 크롬 동적 뷰포트 대응 하단 고정바